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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제친 부커상 예니 에르펜베크는 누구

by gambaru 2024.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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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황석영 수상 여부로 관심을 모았던 2024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상은 결국 소설 ‘카이로스’를 쓴 독일 작가 예니 에르펜베크에게 돌아갔습니다. 최종후보에 올랐던 황석영의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영문 제목 'Mater 2-10')는 고배를 마셨습니다. 황석영은 2019년 '해질 무렵'(At Dusk)으로 예선에서 떨어진 데 이어 두 번째 낙선입니다. 지금까지 한국 소설은 정보라의 '저주토끼', 천명관의 '고래'에 이어 최근 3년 연속 최종후보에 올랐습니다. 부커상은 한강이 2016년 수상, 2018년 최종후보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황석영을 물리치고 수상한 예니 에르펜베크는 누구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독일 분단 시기인 1967년 동독 지역 베를린에서 태어났습니다. 책 제본가로 직업교육을 받은 뒤 오페라 연출을 전공했습니다. 베를린에 살며 연출가이자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1999년 첫 장편소설 '늙은 아이 이야기'를 출간했는데,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에르펜베크는 베를린 김나지움 11학년(독일의 고등학교 과정)을 몇 주간 다시 다니며 17세 여학생의 삶을 직접 살았습니다. 2000년에는 첫 희곡 '고양이는 목숨이 일곱 개'를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초연했습니다.

21세기 독일어권의 대표적인 서사적 소설가인 예니 에르펜베크는 훔볼트 대학교에서 연극학을 공부하고 한스 아이슬러 음악학교에서 오페라 연출을 공부했습니다. 이때 하이너 뮐러, 루트 베르크하우스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후 베를린과 오스트리아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수많은 오페라 작품을 연출했습니다.

2001년 단편집 '아트로파 벨라돈나', 2004년 장편소설 '사전', 2008년 '그곳에 집이 있었을까', 2018년 '모든 저녁이 저물 때' 등을 발표했습니다. 여러 작품이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 소개되었습니다. 잉게보르크 바흐만 심사위원상, 예술가협회 문학상, 졸로투른 문학상, 하이미토 폰 도더러 문학상, 헤르타 쾨니히 문학상, 리테라투르 노르트 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전업 작가와 연출자로서 베를린에 살고 있습니다. (YES24 작가 소개 참조)

 

독일 분단과 통일 문제를 여러 작품에 녹여냈던 에르펜베크는 2021년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 수상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습니다. 당시 기자간담회 후 작성된 경향신문 기사의 일부입니다.

"동독출신 작가 예니 에르펜베크의 글은 친절하지 않다. 서사의 구조를 무질서하게 전개한다. 분절된 문장들 속에서 글을 읽어가는 작업은 그래서 고통스럽다. 그의 책 <모든 저녁이 저물 때>(한길사)도 마찬가지다. 에르펜베크는 이 소설에서 한 여인의 일생을 다섯 개의 막으로 나눈다. 소설 속 여인은 다섯 번에 걸쳐 죽음을 맞이한다. 작가는 그녀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여러 우연이 겹쳐 그녀가 그 시점에 죽지 않았더라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를 이야기한다.

예니 에르펜베크(54)는 25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한국은 모두 분단을 겪었다. 사람은 어떤 나쁜 경험을 하고나면 ‘나 자신은 누구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생기는 것”이라며 “역사적으로 모두가 함께 겪은 일들이 개인의 삶 속에서는 어떻게 일반화될 수 있는지를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에르펜베크는 제5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돼 한국을 방문했다.

이 상은 통일문학의 대표 문인인 고(故) 이호철 작가의 정신을 기려 2017년 서울 은평구가 제정했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분쟁과 차별, 폭력, 전쟁 등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이를 치밀하게 그려낸 작가들에게 수여한다. 김남일 선정위원장은 “20세기의 고단한 역사가 흘러가는 동안 여성들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갔는지를 보여주는, 여성들의 서사를 풀어낸 작품”이라며 “관습과 율법, 폭력과 전쟁, 추방과 학살 등 감당하기 어려운 서사를 두루 견뎌낸 유럽대륙의 생존자나 견뎌내지 못하고 죽은 자들에게 작가가 보여준 진지한 관심과 애정이 이호철 문학상이 추구하는 가치와 맞닿아 있다”고 평가했다.

에르펜베크는 통일독일 이후 동독문학의 가능성과 저력을 입증한 작가로 주목받아왔다. 독일문학은 통일을 계기로 동서로 분절되지 않은 ‘하나의 문학’으로 복원되는 외양을 보였다. 그러나 동독이 서독에 일방적으로 흡수통합된 1990년을 기점으로 동독문학은 엄밀히 하나의 문학으로 존재하기 어려웠다. 동독의 문학제도들은 붕괴되거나 서독의 방식으로 재편됐다. 그러나 동독문학이 가진 독자적 생명력은 예상보다 끈질겼고, 그 중심에 에르펜베크가 있었다.

그의 작품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두 체제 모두를 경험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비판적 균형감각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에는 유럽 난민들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에르펜베크는 “동독 출신이라는 경험이 유럽난민 문제에 관심을 갖는 데 큰 작용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동독 출신 국민들은 통일 후 서독인이 되는 법을 배워야 했다. 통일이 된 독일에서 동독 출신들은 외국인처럼 살았고, 여태껏 몰랐던 새로운 규율을 경험하고, 새로운 삶의 패턴을 배워가야 했다”면서 “우리가 난민은 아니었지만 통일된 독일에서 타인으로 취급받아왔다”고 말했다.

한 여인의 삶을 관통하는 죽음에 대해 풀어놓은 <모든 저녁이 저물 때> 역시 그 경험들이 바탕이 된 작품이다. 에르펜베크는 막간극(연극의 막 사이 또는 전후에 진행하는 짧은 연극) 형식을 가져와 글을 써내려간다. 그는 이 같은 형식에 대해 “새로운 시도를 통해 문학적 자유를 누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에르펜베크는 “사람이 한 번이 아니라 다섯 번을 산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을 소설로 옮기기 위해 서술방식을 연극에서 가져왔다”고 했다.

이 작품은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만들어졌지만 에르펜베크는 “내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2008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처음으로 죽음이 무엇인지, 어머니를 잃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됐다”면서 “‘만약 어머니가 다른 시점에 돌아가셨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한 것이 이 책을 쓸 수 있는 시작점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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