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검찰총장이 5월 2일 주례 보고 자리에서 송경호 서울지검장에게 김건희 명품백 수수 관련 고발 사건에 대한 신속한 수사를 지시했다고 MBC가 보도한 뒤에 이 사안이 일파만파를 낳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언론에 슬쩍 흘린 것도 무슨 의도가 있을 것으로 짐작하기 어렵지 않지만, 그 뒤 이에 대한 기자 질문에 총장이 공개적으로 엄정 수사 방침을 밝히면서 속셈이 무엇인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김건희 명품백 수수 논란은 어떤 사건
오랫동안 남북 통일운동에 간여해온 재미동포 최재영 목사가 2022년 9월에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의 전시기획사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을 방문해 김건희 여사와 면담하면서 300만 원 상당의 프랑스 명품 브랜드 크리스챤 디올의 레이디 디올 WOC 파우치를 전달했습니다. 이 상황은 몰래카메라로 촬영됐고 이 영상을 야권 성향의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가 1년이 지난 2023년 11월 27일 공개하면서 알려졌습니다. 이후 서울의소리는 12월에 대검찰청에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청탁금지법 위반과 뇌물수수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김 여사의 뇌물수수, 몰래카메라를 이용한 함정 취재에 대한 비난 등 제각각의 논란이 불거졌지만 정작 이 사건을 맡은 검찰은 이후 5개월 동안 이렇다할 수사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임기 4개월 남기고 면피용 수사 가능성
사건 자체는 복잡할 것이 없습니다. 영상이 있으니 사실 확인도 어렵지 않습니다. 사회적 파장이 컸으니 고발되자마자 당장 수사해서 결론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아무일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 것은 두 가지 이유밖에 없습니다. 대통령 부인에 관한 사건이라는 것과 어쨌든 수사를 하면 세간에 오르내릴 게 뻔한데 시기적으로 총선을 앞두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총선이 끝나자마자 수사 지시가 나온 것은 두 번째 이유가 해소되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첫 번째입니다. 어느 정권에서든, 사안이 크든 작든 대통령 부인과 관련된 사건을 검찰 하고 싶은대로 수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하겠다고 공개한 데는 김건희 사건을 계속 뭉개고 갔다가는 검찰 외부는 물론이고 내부 비판도 감당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작용한 것일 수 있습니다.
김건희 관련 사건은 이 명품백 의혹만이 아닙니다. 대선 과정에서 온갖 루머들이 나돌았고 그 중 경력 과장, 논문 표절 등 일부는 사실로 확인돼 사과 기자회견까지 했습니다. 지금도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관련 의혹 등 명품백보다 더 큰 사건들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역시 제대로 수사를 받고 있지 않는 상황입니다.
최고 권력 봐주기라는 야당 등의 외부 비판은 진즉부터 있었습니다. 이제는 말로만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특검을 벼르고 있습니다. 여론도 특검을 해야 한다가 우세합니다. 이대로라면 특검으로 가면 가는대로, 안 가면 안 가는 대로 검찰은 뭐 하고 있느냐는 비난이 더 커질 게 뻔합니다.
최근 들어 내부에서도 수사를 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도이치모터스 사건을 두고는 지난해 말 서울지검장이 수사해야 한다고 건의했고 그 때문에 지검장을 교체하니 마니 하는 설이 검찰 주변에서 파다했다고 합니다. 김건희 여사 관련 사건을 지금처럼 모두 뭉개고 갈 수는 없는 임계점에 가까워졌다고 검찰총장은 느꼈을 수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4개월 뒤 임기를 마칠 총장은 밖에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검찰 후배들한테까지 좋은 소리 못 듣고 떠나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 정도는 털고 가자고 했을 때 제일 쉬운 선택이 명품백 사건입니다. 엄정 수사라고 하지만 김건희 여사가 소환 조사에 응할 리도 없고, 청탁금지법은 부인에 대해서는 적용도 안 되고, 대통령이 이를 알고도 묵인했다면 위법이지만 애초 김건희가 타깃이었는데 윤석열 대통령까지 조사하겠다고 나설 리도 없을 겁니다.검찰총장이 공언한대로 임기내 수사를 마무리하겠지만 결론은 이미 나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대통령 부인도 수사했다"는 말을 만들기 위한 면피용 수사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통령과 각 세우기? 한동훈 돕기?
다만, 결과적으로 이런 판단은 대통령 부부의 감정을 상하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불과 2개월 전 윤석열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명품백 사건을 "정치 공작"으로 일축했습니다. 검찰총장의 명품백 수사 발언 직후 대통령실에서는 "뒤통수 맞았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2주년 기자회견에서는 도이치모터스 사건을 전 정권에서 자신을 타깃으로 탈탈 털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고 특검할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검찰이 대통령의 이런 반응을 충분히 예상하고도 명품백 사건 만이라도 수사하겠다고 한 건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입니다. 그렇다고 이를 대통령과의 결별로 보는 것은 과도한 해석입니다. 검찰이 법무부를 통해 검찰 인사권을 쥐고 있는 검찰총장 출신 정권 수장과 각을 세워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명품백 수사로 검찰 안팎의 비난을 가능한한 무마하면서 대통령의 짐도 하나 덜어주려는 묘수라고 여기고 있을 겁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과 묘한 갈등 국면에 들어선 한동훈에 힘 실어주기가 아니냐고도 합니다만 이 또한 과장된 해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원석은 서울대 정치학과, 한동훈은 서울대 법대로 학과는 다르지만 사법연수원 동기입니다. 나이는 이원석이 4살 더 많습니다. 두 사람 다 수사에서 두각을 보여 검찰 요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과거부터 친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일로 경쟁하는 관계라고 보는 게 타당하지만 윤석열과 친분 관계, 추미애 법무장관 시절 둘 다 좌천 경험 등으로 심정적 유대가 생겼을 수는 있습니다.
한동훈이 정치인으로 홀로서기 하는 것인지도 사실은 불분명한데, 검찰이 단지 겉모습으로 대통령과 각 세우는 것처럼 보인다고 이를 한동훈 돕기로 해석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