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9월 6일 명품가방 수수 의혹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를 재판에 넘기지 말 것을 권고했습니다. 위원들은 김 여사에 대해 청탁금지법 위반, 뇌물수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증거인멸,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변호사법 위반 등 6가지 혐의를 모두 살펴본 뒤 이같이 결론 내렸다고 합니다. '혹시' 하는 일말의 기대를 했지만 '역시'라는 말밖에 안 나오는 결과입니다. 검찰은 이르면 다음 주 중에 최종 무혐의 처분을 내릴 것으로 보입니다. 의혹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는데 사법부의 판단을 받아보지 않겠다는 겁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가진 한국 검찰의 전지전능이 또 한 번 발휘되는 장면입니다. 이 사건은 어떻게 시작되어 이날 수심위 불기소 권고 의결까지 받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사건은 2022년 9월 13일 재미동포 최재영 목사가 김건희가 운영하던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을 방문해 김건희에게 300만 원 상당의 디올백을 건네는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최 목사는 그에 앞서 6~8월에도 카톡으로 대화하며 친분이 있던 김건희에게 명품 향수, 화장품, 고가 양주 등을 선물했습니다. 디올백을 건넬 당시 최 목사는 이 수수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소형 카메라로 현장을 녹화했습니다. 이른바 잠입 취재를 한 겁니다. 최 목사 등은 "이전 면담에서 김 여사가 정부 인사에 개입하는 듯한 통화를 하는 것을 봤고, 그래서 잠입취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현장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았지만 실제 이 동영상이 공개된 건 가방을 건네고 1년도 더 지난 2023년 11월 27일입니다. 지난 대선 기간 김건희와 통화 녹취를 폭로했던 야권 성향의 유튜브 채널인 서울의소리가 최 목사 촬영 영상을 전해 받아 보도한 뒤 윤석열 김건희 부부를 청탁금지법 위반,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이에 질세라 보수 성향 시민단체들은 최 목사를 청탁금지법 위반, 주거침입, 위계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고발해 맞받았습니다.
이후 야당은 윤석열 정부를 공격하는 빌미로 기회 있을 때마다 이 사건을 거론했습니다. 결국 윤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유감을 표명하기에 이르렀지만 그렇다고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대로 수사가 시작된 건 4·10 총선 이후였습니다. 임기를 몇 달 남겨두고 있던 이원석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주례 보고를 받고 이 사건 전담수사팀 구성을 지시한 이후부터입니다. 당시 송경호 지검장은 수사가 굼뜨던 시기 김건희 직접 조사 건의를 해서 경질설까지 돌았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법무부는 5월 인사를 단행해 서울중앙지검 지휘부에 윤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이창수 검사를 지검장으로 앉혔습니다. 수사팀은 최 목사와 고발인인 백은종 서울의소리 대표 등을 불러 조사했고, 김건희를 보좌하는 대통령실 행정관들도 조사했습니다. 이 시점에 수사팀은 '직무관련성과 대가성 등에 비춰 범죄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막바지 김건희 직접 조사 때 이원석 검찰총장과 이창수 지검장의 갈등이 불거졌습니다. 원칙 대로 수사하라고 누누이 말해왔던 이 총장도 패스하고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7월 20일 김건희 측에서 지정한 정부 보안청사로 찾아가 휴대폰까지 제출한 상태로 수사를 진행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콜검' 논란입니다.
뒤늦게 조사 사실을 보고 받은 이원석이 화가 나 진상 파악을 지시하자, 수사팀 검사가 사의를 표명하면서 반발했습니다. 퇴임을 앞둔 검찰총장의 권위가 거의 땅에 떨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결국 검사 하나도 쥐어잡지 못하는 형편이 된 이 총장은 수사팀 신임의 뜻을 밝히는 것으로 물러서고야 말았습니다.
예상했던대로 이창수 지검장은 8월 22일 검찰총장에게 '김건희 무혐의' 결론을 보고했고 이 총장은 하루 뒤 논란을 종식시키겠다는 취지로 이 사안을 수심위에 회부했습니다. 검찰 수심위 제도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이 제도 시행 후 개최된 15차례 수심위 가운데 결과가 공개된 12건 중 8건은 수심위 결론이 수사팀 의견과 달랐다고 합니다.
이날 검찰 및 검찰 수심위 판단과 별도로 김건희 명품백 사건은 국민권익위원회에도 회부돼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알려진대로 검찰 결과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권익위의 이 결정에 반대하던 실무 책임자는 여러 고민 끝에 최근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